2026년 10월 30일(금)
매일 아침 과테말라의 뉴스 헤드라인은 무거운 소식들로 시작됩니다. 수도권 정체 구간을 틈타 오토바이를 타고 총기를 겨누는 오토바이 강도(Motoladrones), 흉기 범죄에 노출된 운전자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강력 사건 소식은 현지 주민과 재외동포 모두의 일상에 깊은 불안감을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치안 불안과 폭력은 더 이상 낯선 뉴스가 아닌, 매일 마주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경찰(PNC) 범죄 통계를 바탕으로 한 시민단체 Diálogos의 범죄 관측 자료에 따르면, 과테말라는 2022년 약 3,000건, 2023년 약 2,900건, 2024년 약 2,800건 이상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전국 살인 사건의 약 3분의 1은 과테말라주에 집중돼 있으며, 수도 과테말라시와 믹스코, 비야 누에바, 산미겔 페타파 등 수도권 인접 지역이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테말라주에서만 매년 약 900~1,000명 안팎이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수준으로 이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2명 이상이 수도권에서 살해되는 셈이다. 살인 사건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주민 모두가 체감하는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도와 절도는 피해 규모가 통계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크다. 경찰 신고 자료에는 보행자 대상 강도, 오토바이·차량 절도, 상가 침입, 휴대전화 강탈 사건이 매년 수천 건씩 집계된다. 그러나 피해액이 작거나 신고해도 회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범죄 피해는 공식 수치보다 많다는 것이 시민사회와 치안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수도권 도로에서는 오토바이를 이용한 강도, 이른바 ‘모토라드론(motoladrón)’ 범죄가 시민들의 공포를 키우고 있다. 신호 대기 중 휴대전화나 가방을 빼앗고 달아나는 범죄는 물론, 무장 강도와 총격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반복된다. 버스·택시·배달업 종사자, 소상공인, 야간 근무자들은 범죄에 더 노출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잔혹한 사건 현장의 바로 곁에서는 또 다른 과테말라의 모습이 목격된다.
최근 Condado Naranjo에서 발생한 우버 운전자 강도 사건이 대표적이다. 흉기에 맞아 피를 흘리며 차량을 빼앗긴 젊은 운전자가 도로변에 남겨졌을 때, 지나가던 시민들은 망설임 없이 차를 멈춰 섰다.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이웃의 상처를 살피고 위로하며 신속히 구호 요청을 보낸 이들은 다름 아닌 평범한 과테말라 시민들이었다. 당시 현장에 차를 멈추고 구호에 동참했던 한 시민은 당시 정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도로변에 피를 흘리며 넘어져 있는 운전자를 보았을 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보복이나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차를 멈추지 않으면 저 청년이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도 언제든 도로 위에서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눈앞의 이웃을 돕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익명의 현장 목격 시민
이처럼 한쪽에서는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위기에 처한 타인을 돕기 위해 손을 내미는 극명한 두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과테말라라는 사회와 그 안의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테말라는 오랜 내전의 아픔과 만성적인 치안 인프라의 부족을 겪어왔다. 정부나 치안 당국의 즉각적인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과테말라 사람들에게 연대(Solidaridad)는 단순한 도덕적 미덕을 넘어 일종의 '생존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당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순간일수록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공동체적 책임감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 의식은 비단 사건 현장의 시민들뿐만 아니라 과테말라 사회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에서 급여를 받지 않고 본업과 봉사를 병행하며 인명 구조의 최전선을 지키는 자원봉사 소방대(Bomberos Voluntarios)가 대표적입니다. 20년 이상 현장을 지켜온 구조대원은 연대의 의미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한 사고 현장에 출동했을 때였습니다. 현장에 13명의 부상자가 있었는데, 그중 제 친누이도 포함되어 있었고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순간에도 저는 현장을 지키며 응급 처치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소방대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돕고, 필요한 순간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론 후아레스 (Byron Juárez, 자원봉사 소방대원)
강력 범죄가 자주 보도되다 보면 자칫 과테말라 사회 전체가 비인간적이거나 냉혹하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무장 강도 집단은 사회의 극단적인 일부일 뿐, 대다수의 과테말라 대중은 가족과 이웃을 아끼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환경이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내가 언제든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낯선 이의 비극 앞에서도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이다.
산악 구호 작업 중 악천후로 고립되었다가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탈출했던 소방대원의 증언 역시 과테말라인들이 가진 따뜻한 온정을 잘 보여준다.
"악천후로 체력이 고갈되어 고립되었을 때, 그 험한 숲속까지 저를 구하러 와준 이들은 다름 아닌 인근 마을 주민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낯선 저에게 따뜻한 물과 또르띠야(Tortilla)를 건넸고, 무거운 제 구조 장비를 함께 짊어지고 내려가 주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주민들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마사리에고스 (Mazariegos, 현장 출동 구조대원)
또한, 위기 상황이나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생길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 음식을 나누는 민간 나눔 운동 '공동 솥(La Olla Comunitaria)'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나눔의 정서를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는 돈이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굶주림과 위기 앞에서는 계층이 없기에, 서로가 서로의 생존을 돕는다는 마음 하나로 솥에 불을 지핍니다."— 익명의 '공동 솥(La Olla Comunitaria)' 민간 봉사 활동가
우리가 과테말라 사회를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폭력이라는 '현상'과 연대라는 '정서'를 함께 읽어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숫자와 뉴스 보도로 접하는 과테말라는 비정함과 위험으로 가득 찬 곳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따뜻한 정과 공동체 의식을 품고 사는 이웃들이 존재한다. 폭력은 이 사회가 조속히 해결해야 할 아픈 상처이지만, 위기 속에서 빛나는 시민들의 연대 의식은 과테말라가 앞으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희망의 동력이다.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것은 웅장한 조명이 아니라 길가에 켜진 자그마한 촛불들이듯, 폭력의 그늘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과테말라인들의 따뜻한 손길은 이 땅이 가진 참된 얼굴이자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일 것이다.
한과정보 : 박성진